▲ 광치기 해변의 해녀들. 바로 앞 바다에서 건진 해산물들을 맛볼 수 있다.

여자를 닮은 그 섬, 제주 

한적한 제주여행을 위한 또 한 가지 필수조건이 바로 ‘허름한’ 식당 리스트 확보다. 여기서 ‘허름한’이란 단어는 관광객들이 아닌 현지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곳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주는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테마공원 같은 곳이다 보니 크건 작건 대부분의 식당들은 관광객을 겨냥한 곳들이고 그런 곳들엔 당연히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그래서 그 맛도 상당히 도시적으로 변형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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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계절이 조금 늦게 찾아오는 물영아리오름. 철지난 동백꽃 한 송이.(우)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맛보는 성게알칼국수(1인분에 5000원).

이름만 제주식이고 맛은 서울식인 그런 실패를 몇 번 경험하고 나서 부지런히 ‘허름한’ 식당들을 발굴하여 많은 보석 같은 곳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광치기 해산물촌’이다. 성산읍 고성리와 성산리 해안도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바닷가 이름이 광치기인데, 이곳에 가건물을 지어 인근 해녀들이 건져온 해산물들을 맛볼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전화도 없다. 순번을 돌아가며 가게를 지키는 해녀들의 휴대폰 번호가 가게 명함에 쓰여 있었다.


광치기 해안은 백만 불짜리 전망으로도 강추하는 곳이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매끈하고 완벽한 모습을 건너다 볼 수 있고, 바닷가의 너른 바위에 붙은 초록빛 해초들이 시시각각 현란한 빛의 바다를 연출한다. 제주도 현지 처녀총각들의 웨딩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바로 앞 바다에서 건져낸 물미역이 기본으로 나오고, 제주의 명물 홍삼이나 뿔소라, 전복도 좋지만 5월에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성게다. 특히 성게알을 넣어 깔끔하게 끓여낸 성게알칼국수는 5000원이라는 가격에 손님이 도리어 미안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맛을 낸다. 고슴도치처럼 성난 모습의 가시 속에 꼭 들어찬 노란 성게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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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제주도 해녀의 손맛이 담긴 깍두기와 갓김치.

그 성게알은 5월과 6월에 연한 보랏빛이 돌게 되는데, 이때 맛과 향이 가장 훌륭하다. 광치기 해산물촌의 칼국수는 성게알 외에는 아무 요령이 없다. 다시마와 무를 넣어 깔끔하게 끓여낸 채소 국물에 칼국수 면도 시중에 파는 것을 그대로 사다 쓴다. 당근과 양파, 대파 따위의 기본적인 부재료가 들어가며 우르르 끓을 때 성게알을 투입하는 것이 전부다.


아차, 한 가지 더. 어느 해녀의 집 냉장고에 있던 것을 그냥 담아 내온 듯, 가정식 특유의 순수함으로 익은 갓김치와 깍두기. 그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이 집만의 비법이다.


 / 여성조선
 글ㆍ사진 홍수연('맛'전문 방송작가)